밤 12시에 열리는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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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악몽을 팝니다. 밤 12시, 세상에서 가장 수상하고 따뜻한 상담소가 문을 엽니다.
Episode 1 preview
도시는 잠들지 않는다.
다만 얕은수면 상태에 빠질 뿐이다.
오토바이의 배기음,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의 윙윙거리는 소음,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취객의 고함.
이 모든 것이 뒤섞여 도시의 밤을 시끄럽게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강지혁에게는 그 얕은 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후우..."
지혁은 마른세수를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잠을 잔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희미했다.
눈을 감으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비명 소리.
코를 찌르는 매캐한 연기 냄새와 살 타는 역한 냄새.
10년 전 그날.
화마가 휩쓸고 간 참혹한 현장의 기억은 지독한 불면증이라는 형벌이 되어 그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빌어먹을."
지혁은 반쯤 마신 편의점 캔커피를 쓰레기통에 거칠게 던져 넣으며 욕설을 뱉었다.
카페인으로 버티는 것도 이제 한계였다.
머릿속에 자욱한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하고, 심장은 이유 없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당장이라도 길바닥에 쓰러져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막상 집에 들어가 누우면 정신은 더욱 또렷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그때였다.
잿빛으로 죽어있는 좁은 골목 어딘가에서 기묘한 향기가 났다.
쓰레기 냄새나 매연, 음식물 쓰레기의 산패한 냄새 같은 도시의 흔한 악취가 아니었다.
아주 깊고 진한, 비에 젖은 흙내음 같기도 하고 달콤한 야생화 꽃내음 같기도 한 묘한 향기.
마치 깊은 숲속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청량감이 코끝을 스쳤다.
홀린 듯이 걸음을 옮겼다.
평소라면 절대 들어가지 않았을,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둡고 좁은 골목이었다.
형사 직감은 '위험하다'고 경고했지만, 지친 몸은 자석에 이끌리듯 향기를 쫓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막다른 골목 끝에서 작은 불빛이 보였다.
[밤 12시의 상담소]
낡은 목재 간판 위로 보랏빛 네온 사인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런 후미진 곳에 가게가 있었나?'
지혁은 이 구역 담당 형사로 5년을 일했지만, 이런 간판은 금시초문이었다.
담쟁이넝쿨이 뒤덮인 고풍스러운 벽돌 건물.
유리창 너머로는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짙은 벨벳 같은 보라색 커튼만이 굳게 드리워져 있을 뿐이었다.
끼이익-.
문에 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경첩이 녹슨 소리를 내며 무겁게 열렸다.
그리고 그 순간, 골목에서 맡았던 그 향기가 파도처럼 밀려와 지혁을 덮쳤다.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날 정도로 진한 라벤더와 캐모마일,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약초 향들이 뒤섞인 냄새.
그것은 마치 현실의 경계를 넘어 몽롱한 꿈속으로 들어가는 입구 같았다.
"어서 오세요."
가게 안은 어두웠지만 따뜻했다.
천장에 매달린 수많은 드라이플라워와 앤티크한 원목 가구들 사이로,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양초 하나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촛불 뒤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칠흑같이 검은 긴 생머리에 창백하리만치 하얀 피부.
눈동자는 촛불을 머금은 듯 깊고 고요한 흑색이었다.
그녀는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박제된 인형처럼, 미동도 없이 들어오는 지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직 영업합니까?"
지혁은 멍한 정신으로 뻑뻑한 눈을 비비며 물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 시간에 문을 연 찻집이라니.
"네. 문은 밤 12시에 열리니까요."
여자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마치 어머니가 아이에게 불러주는 자장가를 속삭이는 듯한, 울림이 있는 음색.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지혁의 잔뜩 긴장된 어깨 근육이 거짓말처럼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 차가 가장 맛있게 우러난 시간이에요. 한 잔 드릴까요?"
거절할 틈도 없이 여자가 찻잔을 내밀었다.
투명한 유리잔 안에 담긴 찻물은 신비로운 짙은 남색이었다.
마치 밤하늘을 그대로 녹여 찻잔에 담아놓은 듯한 깊은 색깔.
그리고 그 위에는 금가루 같은 것이 은하수처럼 반짝이며 떠다니고 있었다.
"이게... 뭡니까?"
"별빛 차(Starlight Tea)예요. 길 잃고 잠 못 드는 사람들을 위한 약이죠."
지혁의 눈이 커졌다.
잠 못 드는 사람.
내 몰골이 며칠 밤샌 노숙자처럼 엉망이라서 그런가.
"제가 불면증인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림자가... 아주 무거워 보여서요. 땅으로 꺼질 만큼."
여자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옅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기묘하게도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지혁은 무엇에 홀린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찻잔을 들었다.
따뜻한 온기가 차가워진 손끝을 타고 전해져 왔다.
후루룩.
한 모금 입안에 머금는 순간, 입안 가득 향긋한 꽃향기가 폭죽처럼 터졌다.
단순한 차가 아니었다.
목으로 따뜻한 액체가 넘어가는 순간, 머릿속을 짓누르던 무거운 납덩이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묵직하고 달콤한 졸음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며칠, 아니 몇 년 만에 느껴보는 편안한 나른함이었다.
"당신... 대체 누구야..."
지혁의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져 스르르 감겼다.
시야가 흐릿해지는 가운데, 여자가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천천히 펼치는 것이 보였다.
타로 카드였다.
그녀가 긴 손가락으로 뒤집은 카드에는,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광대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더 풀 (The Fool)>.
시작과 모험, 그리고 무모함.
"제 이름은 서은조."
여자의 목소리가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깊은 메아리처럼 울렸다.
"당신의 밤을 들어주는 사람이에요. 부디 좋은 꿈 꾸시길."
지혁은 테이블에 고개를 떨구었다.
깊고 깊은 잠이었다.
비명도, 연기도, 악몽도 없는, 완벽하고 평온한 어둠 속으로 그는 아주 오랜만에 가라앉았다.
***
가게 안에는 다시 정적만이 남았다.
은조는 잠든 지혁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하얀 손가락이 지혁의 거친 손등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
"오랜만이네... 아저씨. 많이 지쳐 보이네요."
그녀의 입가에 씁쓸하고도 애틋한 미소가 번졌다.
창밖에는 여전히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가게 안은 세상과 단절된 듯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밤 12시의 상담소.
길 잃은 영혼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
오늘의 첫 손님은, 너무나도 익숙하고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이었다.
은조는 테이블 위의 촛불을 끄지 않았다.
그를 위한 진짜 밤은 이제 막 시작되었으니까.
(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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